좀 된 이야기지만 2주쯤 전 일요일 모두들 가서 과학하는 마음-발칸동물원 편을 관람하고 왔다. 사실 학교 과제였는데, 우리는 다들 밖에 나가는 것을 귀찮아 하기 때문에 툴툴대면서 연극을 보러 갔다. 특히 힐과 나는 일요일에 외출하면 안되는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몹시 불평을 했다.-_-;
결론적으로 연극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모두 지쳐 있었고 감상문을 쓰는게 난감했기 때문에 다들 분노했다. 그리고 레포트를 쓰고 있는 나는 지금 쩔어있다....
테이블에 앉은 여성이 과자를 먹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들은 어수선하게 자리를 찾아 앉는다. 불편한 자리에 뒤척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여성이 들어와 탁자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다. 마치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배우에게 스태프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광경과 함께 연극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관객과 배우를 나누는 두꺼운 장막도,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점멸하는 조명도 없다.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연극에 말려든다.
연극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나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어 정말 그럴까 확인할 순 없지만, 평범한 연구원의 한때를 잘라서 무대에 붙여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어느 국립대학 생물학 연구소에 세계적인 뇌과학자 알렌 클래식의 뇌의 보관 의뢰가 들어오고, 그와 함께 그녀의 약혼녀였던 과학자 나오코 셰킨즈가 연구소를 방문한다. 무대 위의 사람들은 나오코 셰킨즈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하고, 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것과는 아무 관련 없는 자신들만의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나는 일종의 관음적 즐거움 같은 것을 맛본다. 그리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기전기서 한꺼번에 진행되는 대화들을 한번에 알아듣는 것은 몹시 어렵지만 나는 신중하게 대화들을 받아들인다.
나는 과학하고는 인연이 없다. 전형적인 문과 체질에 고등학교 시절 물리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본 이후 과학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화들을 들으며 긴장하기 시작한다. 과학은 무조건 어렵다는 생각이 지레 겁을 먹게 만든다. 함께 간 친구들도 모두 전형적인 문과 체질, 우리는 아마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진행되는 대화들은 의외로 재미있고 한번씩 거론되었거나 약간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들이다. 과학은 어렵고 무섭다고 생각하지만 SF소설은 즐겨 보는 편이다. 과학연극이라고 해서 긴장했던 게 사라지고 점점 나열되는 대화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쪽에선 세 명이 교생실습의 연구를 하고 있다. 물질에 관한 연구에서 생명에 관한 연구로 연구의 주제가 바뀐 이유들도 토론하고 어째서 기아문제가 사라지지 않는가 같은 이야기를 학생과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주고받고 있다. 모두 열심히 '이런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대답할까?' 라는 상황을 연구하고 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과학 수업시간 동안 질문을 한 적이 있는가? 기억을 아무리 되돌려 보아도 손을 든 기억은 없다. 나는 수업에 집중하는 성실한 편인 학생이었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 이외의 것에 궁금증을 가져본 적은 없었고,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나 뿐만 아니라 나의 클래스메이트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나의 선생님도 이런 식으로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겠지. 지금도 많은 선생님들이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의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느라 애쓰고 있겠지.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그리고 이제서야 왜 기아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를 겨우 궁금하게 생각한다. 나의 학생시절 내내 선생님이 혹시 준비했을지도 모르는 답을 이제야 탐구해 볼 생각이 든다. 나의 선생님에게 미안하고, 새로운 궁금증을 가지게 해 준 연극에 기쁘고 감사함에 미소를 짓는다.
대화 주제는 뇌 이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식물인간에게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하면 과연 그것은 누구인가? 친구에게 추천받아서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 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그것을 읽으면서 나도 꽤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나의 몸에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하면, 그것은 몸의 주인인 나라는 인간일까? 아니면 뇌의 주인이 되는걸까? 만약 전체가 아니라 뇌의 일부분의 이식한다면? '변신' 에서 주인공은 강도에게 총을 맞고 그 강도의 뇌를 일부 이식받는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점점 인격이 변해가고 낯선 사람에게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만약 뇌의 이식률이 반을 넘어간다면? 깨어났을 때 나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또 하나 늘었다. 나는 탐구심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뇌 이식에 대해 이야기하던 나오코 셰킨즈는 퇴장하고 남은 사람들은 생명 공학 연구와 도덕의 충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인간의 발전을 위해 동물 실험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과, 인간의 발전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켜도 괜찮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주장하는 쪽이 나뉜다. 어느 쪽도 함부로 대답 할 수 없는 문제다. '인간을 위하여' 라는 얄팍한 대의가 아니라 자신의 절박한 사정에 의해 원숭이로 실험을 하는 여자 과학자를 보며 한숨을 쉰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여태까지 의학이 발전해 온 것은 비윤리적인 실험 덕분이었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없다. 꽤 냉정하게 어쩔 수 없잖아,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논쟁 중 '어디서부터 인간인가를 인간이 정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라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이것은 그들이 연구하고 있던 원숭이형 컴퓨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던 중 나오던 대사다. 흔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인공지능 컴퓨터. 그것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인간의 기준은 무엇인가? 몸의 90%이상의 기계로 대체한 사람은 인간일까, 기계일까? 나도 궁금해 하고 있던 중 '어디서 부터 인간이가를 인간이 정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라는 대사가 튀어나온다. 나는 약간 충격을 느낀다. 나는 인간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인간인지라 다른 동물이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말을 듣고 인간의 기준을 우리가 정할 수 있다는 생각의 오만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또 동물실험에 관한것도, 윤리를 떠나서, 인간의 오만함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생각이 어지럽게 머리 속을 떠돈다.
연극은 시작했을 때 처럼 끝났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끝난다. 우리는 천천히 불이 꺼진 무대를 보면서 그제야 연극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막은 내려가지 않는다. 그저 앉아있던 사람과 무대 뒤로 갔던 사람이 다시 나와 인사를 한다. 나는 갑자기 소설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현실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동안 떠올렸던 의문들을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는다. 수첩에 적어놓고 나중에 찾아보리라 생각한다. 꽉 찬 관객석의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한 표정들이다. 다들 나와 같은 것을 느꼈을까.
나는 아직도 과학이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SF소설은 좋아한다. 교과서는 싫지만 SF소설에 나오는 개념이라면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제 과학 연극도 좋아한다. 과학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이지만 얕아져 간다.
결론적으로 연극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모두 지쳐 있었고 감상문을 쓰는게 난감했기 때문에 다들 분노했다. 그리고 레포트를 쓰고 있는 나는 지금 쩔어있다....
테이블에 앉은 여성이 과자를 먹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들은 어수선하게 자리를 찾아 앉는다. 불편한 자리에 뒤척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여성이 들어와 탁자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다. 마치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배우에게 스태프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광경과 함께 연극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관객과 배우를 나누는 두꺼운 장막도,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점멸하는 조명도 없다.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연극에 말려든다.
연극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나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어 정말 그럴까 확인할 순 없지만, 평범한 연구원의 한때를 잘라서 무대에 붙여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어느 국립대학 생물학 연구소에 세계적인 뇌과학자 알렌 클래식의 뇌의 보관 의뢰가 들어오고, 그와 함께 그녀의 약혼녀였던 과학자 나오코 셰킨즈가 연구소를 방문한다. 무대 위의 사람들은 나오코 셰킨즈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하고, 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것과는 아무 관련 없는 자신들만의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나는 일종의 관음적 즐거움 같은 것을 맛본다. 그리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기전기서 한꺼번에 진행되는 대화들을 한번에 알아듣는 것은 몹시 어렵지만 나는 신중하게 대화들을 받아들인다.
나는 과학하고는 인연이 없다. 전형적인 문과 체질에 고등학교 시절 물리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본 이후 과학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화들을 들으며 긴장하기 시작한다. 과학은 무조건 어렵다는 생각이 지레 겁을 먹게 만든다. 함께 간 친구들도 모두 전형적인 문과 체질, 우리는 아마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진행되는 대화들은 의외로 재미있고 한번씩 거론되었거나 약간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들이다. 과학은 어렵고 무섭다고 생각하지만 SF소설은 즐겨 보는 편이다. 과학연극이라고 해서 긴장했던 게 사라지고 점점 나열되는 대화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쪽에선 세 명이 교생실습의 연구를 하고 있다. 물질에 관한 연구에서 생명에 관한 연구로 연구의 주제가 바뀐 이유들도 토론하고 어째서 기아문제가 사라지지 않는가 같은 이야기를 학생과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주고받고 있다. 모두 열심히 '이런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대답할까?' 라는 상황을 연구하고 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과학 수업시간 동안 질문을 한 적이 있는가? 기억을 아무리 되돌려 보아도 손을 든 기억은 없다. 나는 수업에 집중하는 성실한 편인 학생이었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 이외의 것에 궁금증을 가져본 적은 없었고,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나 뿐만 아니라 나의 클래스메이트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나의 선생님도 이런 식으로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겠지. 지금도 많은 선생님들이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의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느라 애쓰고 있겠지.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그리고 이제서야 왜 기아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를 겨우 궁금하게 생각한다. 나의 학생시절 내내 선생님이 혹시 준비했을지도 모르는 답을 이제야 탐구해 볼 생각이 든다. 나의 선생님에게 미안하고, 새로운 궁금증을 가지게 해 준 연극에 기쁘고 감사함에 미소를 짓는다.
대화 주제는 뇌 이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식물인간에게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하면 과연 그것은 누구인가? 친구에게 추천받아서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 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그것을 읽으면서 나도 꽤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나의 몸에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하면, 그것은 몸의 주인인 나라는 인간일까? 아니면 뇌의 주인이 되는걸까? 만약 전체가 아니라 뇌의 일부분의 이식한다면? '변신' 에서 주인공은 강도에게 총을 맞고 그 강도의 뇌를 일부 이식받는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점점 인격이 변해가고 낯선 사람에게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만약 뇌의 이식률이 반을 넘어간다면? 깨어났을 때 나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또 하나 늘었다. 나는 탐구심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뇌 이식에 대해 이야기하던 나오코 셰킨즈는 퇴장하고 남은 사람들은 생명 공학 연구와 도덕의 충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인간의 발전을 위해 동물 실험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과, 인간의 발전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켜도 괜찮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주장하는 쪽이 나뉜다. 어느 쪽도 함부로 대답 할 수 없는 문제다. '인간을 위하여' 라는 얄팍한 대의가 아니라 자신의 절박한 사정에 의해 원숭이로 실험을 하는 여자 과학자를 보며 한숨을 쉰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여태까지 의학이 발전해 온 것은 비윤리적인 실험 덕분이었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없다. 꽤 냉정하게 어쩔 수 없잖아,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논쟁 중 '어디서부터 인간인가를 인간이 정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라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이것은 그들이 연구하고 있던 원숭이형 컴퓨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던 중 나오던 대사다. 흔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인공지능 컴퓨터. 그것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인간의 기준은 무엇인가? 몸의 90%이상의 기계로 대체한 사람은 인간일까, 기계일까? 나도 궁금해 하고 있던 중 '어디서 부터 인간이가를 인간이 정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라는 대사가 튀어나온다. 나는 약간 충격을 느낀다. 나는 인간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인간인지라 다른 동물이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말을 듣고 인간의 기준을 우리가 정할 수 있다는 생각의 오만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또 동물실험에 관한것도, 윤리를 떠나서, 인간의 오만함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생각이 어지럽게 머리 속을 떠돈다.
연극은 시작했을 때 처럼 끝났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끝난다. 우리는 천천히 불이 꺼진 무대를 보면서 그제야 연극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막은 내려가지 않는다. 그저 앉아있던 사람과 무대 뒤로 갔던 사람이 다시 나와 인사를 한다. 나는 갑자기 소설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현실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동안 떠올렸던 의문들을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는다. 수첩에 적어놓고 나중에 찾아보리라 생각한다. 꽉 찬 관객석의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한 표정들이다. 다들 나와 같은 것을 느꼈을까.
나는 아직도 과학이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SF소설은 좋아한다. 교과서는 싫지만 SF소설에 나오는 개념이라면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제 과학 연극도 좋아한다. 과학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이지만 얕아져 간다.






덧글
제12언어 2006/12/29 23:56 # 삭제 답글
"과학하는마음- 발칸동물원편"을 공연했던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입니다.좋은 내용이라 저희 싸이클럽에 윗글을 옮겨놨습니다만...
club.cyworld.com/12thtongue